[김준혁의 생각] 사람의 무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기사입력 2023.10.31 09:38
  • 최종수정 2023.11.02 16:45
  • 기자명 OBC더원방송
▲김준혁 한신대학교 교수
▲김준혁 한신대학교 교수

한신대학교의 역사와 인물에 대한 특강을 부탁받았다. 학교 본부에서 재학생과 졸업생 그리고 미래에 한신에 지원할 학생들을 위한 특별 영상을 만들기로 하고, 그 강의를 내게 부탁을 했다. 한신대학교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나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한신의 역사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한신 출신으로 뛰어난 인물들이 많다. 평화운동가 문익환 목사님, 독립운동가이자 유신독재와 맞서 싸운 장준하 선생님, 현재 대한민국 사상계를 이끌어가는 도올 김용옥 교수님도 다 한신 출신들이다. 

이 분들도 우리 국민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실제 한국 민주주의와 평화운동에 더 많은 기여를 한 분은 장공 김재준 목사님이다. 이 분은 근본주의적 기독교관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사고하고, 또한 예수의 말씀을 사회적으로 실천하라고 강조하셨다. 본인 역시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삶을 평생 유지하셨다.

이 분의 전기 안에 있는 좌우명을 읽다가 감동받았다. 이 분 좌우명은 흡사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강진 유배지 사의재(事宜齋)의 내용과 거의 같았다. 위대한 인물들이 갖는 공통점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좌우명을 보자!

1.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2. 대인관계에서 의리와 약속을 지킨다.

3. 최저 생활비 이외에는 소유하지 않는다.

4. 버린 물건, 버려진 인간에게서 쓸모를 찾는다.

5. 그리스도 교훈을 기준으로 ‘예'와 ‘아니오'를 똑똑하게 말한다. 그 다음에 생기는 일은 하나님께 맡긴다.

6. 평생 학도로 산다.

7. 시작한 일은 중단하지 않는다.

8. 사건 처리에는 반드시 건설적, 민주적 질서를 밟는다.

9. 산하(山河)와 모든 생명을 존중하여 다룬다.

10. 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배려한다  

하나하나 금과옥조같은 말씀이다. 장공의 좌우명 첫 번째가 바로 말을 삼가하는 것이다. 말을 삼가한다는 것은 바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도한 언어의 남발은 자신과 사회에 비극을 줄 수 있다. 인간의 관계도 깨지게 할 수 있다. 좋은 말을 하기도 어려운데 나쁜 말이 난무하면 그 사회는 좋은 사회로 나갈 수 없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사의재 역시 깊은 의미가 있다.

유배지의 초라한 강진 읍성 동문 밖의 작은 주막집 뒷방을 ’사의재‘란 편액을 걸고 유배인의 자세를 스스로 정한 것이다.

첫째, 말을 삼간다. 둘째, 생각을 맑게 한다. 셋째, 옷을 단정히 입는다. 넷째, 행동을 장엄하게 한다.

아무 죄도 없지만 권력자들에 의해 대역죄인으로 몰려 유배지에 와 있지만 당당하게 살아가자는 스스로의 위안과 함께 말의 무게를 생각하고 필요없는 말 외에는 하지 말고, 비록 억울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말을 줄이자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장공과 다산은 생각이 같을까?

새벽에 장공의 전기를 읽으면서 스스로 다짐을 했다. 그간 얼마나 많은 말을 쏱아내었는가?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얄팍한 밑바닥을 보이면서 숱하게 떠들고 살지 않았는가? 과도한 언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 속에 살고 있지 않았는가? 나로부터 변하고 우리 가족들도 변하고, 또 나의 지인들이 변하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는 보다 나은 사회로 나가지 않을까?

우리 만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도 현재의 권력자들도 말의 중요함을 알고 삼가는 태도를 지녔으면 한다. 

오늘 새벽의 소중한 깨달음이 내 평생에 지속되기를 내 스스로 희망하며, 그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말은 무기일 수도 있고, 나를 죽일 수도 있다.

사람의 무게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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