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건의 교육나침반] 미래교육으로 가는 길(7) - 교육 개혁, 메이지 유신의 결단이 필요하다

사리(私利)를 버리는 절박한 위기감이 개혁의 길을 만든다

  • 기사입력 2023.10.30 08:48
  • 기자명 OBC더원방송
▲고영건 (주)위키스터디 CEO
▲고영건 (주)위키스터디 CEO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은 비서구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근대화 혁신의 유일한 성공 사례다. 일본은 19세기 중반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서구 제국들의 군사적 위력을 목도하면서 큰 위기감을 느꼈다. 역사적 고비에서 에도 막말의 집권 세력들은 스스로 일본의 봉건 질서인 막부 통치를 뿌리째 뽑아버리는 근대화 혁신을 단행한다. 이러한 결단으로 산업혁명과 헌정(憲政:헌법과 의회)을 함께 이루는 극적인 대변혁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서유럽에서 ‘발명’해 낸 근대국가 시스템인 헌법, 의회, 선거, 국민국가, 자본주의 등은 당시 아시아 지역의 전통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매우 낯선 것들이었다. 어떻게 일본만이 유일하게 이 낯선 서구의 발명품을 신속히 받아들이고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일까? 이후 일본의 행보를 생각하면 메이지 유신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냉정한 시각으로 살펴보건대, 메이지 유신은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한 한국 교육 현실에 큰 시사점을 준다.

1853년, 이른바 ‘흑선내항’이라 불리는 페리함대의 출현은 일본의 지식인과 사화(士化)된 사무라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일본 사회 전반에 걸쳐 강렬한 위기감을 몰고 왔다. 이 다소 과장된 위기감은 퇴영적인 쇄국 대신 적극적인 체제 변혁을 택했다. 그리고 이것은 근대 일본을 추동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19세기 중반 도쿠가와 막부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황이었고, 통치 시스템 또한 흔들림이 없었다. 260개의 번(藩)들은 변함없는 충성을 보여주었고, 막부의 군사력과 권위는 봉건 질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에 충분했다. 이 때문에, 청나라와 조선의 양이론(攘夷論)이 쇄국에 머무르게 된 것과 달리, 일본의 양이론은 서양의 군사 기술을 적극 수용하는 부국강병과 해외 팽창론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부국강병의 혁신 과정에서 느꼈던 근본적인 한계는 막부 체제 그 자체였다. 결국 막부 집권층의 중추적인 지위에 있었던 엘리트화된 사무라이들은 고뇌 끝에 대의(大義)를 위한 칼을 들게 된다.

현재의 위기와 미래를 위해 안정된 통치 권력을 스스로 무너뜨린 대혁신의 결단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막부보다 일본을 위한 결단’을 내린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와 앙시앵 레짐 해체의 주역인 아베 마사히로, 사카모토 료마와 그의 스승 가쓰 가이슈의 역사적 사명 의식은 실로 위대했다. 그들의 개혁 의지가 있었기에 일본은 비서구 국가 중 유일한 세계 패권 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다.

메이지 유신은 신흥 세력(요시다 쇼인과 후쿠자와 유키치의 영향을 받은 그룹)의 유능함보다 지배 세력의 대승적(大乘的) 결단을 더 크게 봐야 한다. 지배계급이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사즉생(死卽生)의 결단을 했다는 것이다. 메이지 유신의 성공은 ‘피 흘리지 않는 혁명이 국가를 번영케 한다’는 역사적 법칙이 잘 반영되어 있다. 대의를 위한 패배의 길을 스스로 선택했던 당시 도쿠가와 막부는 무능하고 굴욕적인 기득권 집단이라는 오명을 감내해야 했지만, 역사의 평가에서 승자가 되었다. 우리 교육의 혁신을 위해서는 170년 전 메이지 유신으로 가는 길목에 섰던 그들의 결단을 깊이 새겨야 한다.

메이지 유신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사익(私益)을 버리고 미래를 준비하라! 

우리의 현재 모습을 보면 메이지 유신의 과정에서 일본 위정자들의 모습과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위정자들의 위기의식이다. 위정자들은 현재와 미래의 위험을 직시하고 자신들의 역사적 사명에 대해 철저히 성찰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메이지 유신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득권 스스로 앙시앵 레짐을 해체하는 결단을 한 것이다. 페리함대가 에도항에 들어왔던 1853년 에도시대는 경제적 번영과 함께 난학을 통한 서양 과학기술의 유입이 급속도로 진행되던 시기였다. 그러던 차에 막부 엘리트들은 서양의 항해술과 함대의 위력을 보면서 큰 위기감을 느꼈다. 당시 막부는 충분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내부 통치를 위해 의도적으로 해군을 키우지 않았다. 이에 가쓰 가이슈는 사카모토 료마와 함께 서구식 함대로 해군을 혁신하기 위해 막부 체제를 해체할 것을 결단한다. 이후 일본은 막강한 해군력으로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태평양 시대의 패권 국가가 되었다.

메이지 유신에서 가장 크게 봐야 할 것은 집권 세력 스스로 패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에도 시대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대정봉환(大政奉還)으로 270년간의 막부 체제를 폐지하고 자신도 쇼군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앙시앵 레짐을 해체한다. 메이지 유신 성공의 가장 큰 의미는 집권 세력이 위기의 순간에 사리를 버리고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큰 위기 상황을 목전에 마주하고도 무사안일과 권력 쟁투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우리 위정자들의 모습을 볼 때 19세기 일본의 경험은 많은 교훈을 준다.

둘째, 위기의 순간, 진영을 뛰어넘는 큰 비전을 통해 공의(公議)를 형성해 나간 것이다. 존왕양이 사상의 주창자인 요시다 쇼인(이토 히로부미의 스승)은 깊은 고뇌와 번민이 있었지만, 스스로 ‘작은 국가’(번)의 편벽함에서 벗어나 ‘큰 국가’(일본)라는 근대적 국가 의식을 열성적으로 가르쳤다. 요시다 쇼인의 큰 비전은 진영을 뛰어넘어 일본의 부국강병을 주도한 인물들을 길렀을 뿐만 아니라 웅비론(雄飛論)의 정당성을 확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의 모습은 이념 대립이 극한의 혐오 정치로 치닫고 있는 우리의 아픈 부분을 건드린다.

‘한강의 기적’ 그 결기, 다시 살려내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부터 노동, 연금, 교육 개혁을 미래를 위한 재도약의 큰 비전으로 내놓았다. 현재 우리가 처한 심각한 위기에 대한 적확한 처방이다. 3대 개혁은 초저출산과 초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지금 상황에서 진영을 초월한 미래 비전이다. 노동 개혁은 큰 저항이 있었지만 결단의 가시적 성과가 나오고 있다. 정치 이념에 매몰되었던 기존의 노정관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원칙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 개혁은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메이지 유신의 교훈으로 보건대, 교육 개혁이 이토록 지지부진한 것은 절박한 위기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 개혁에서 보여주었던 국토부 장관의 결기가 교육부 장관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위기의식의 결여는 교육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의(公議)를 모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교육 개혁의 대업(大業)을 시작하려면 교육부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구체제를 해체하겠다는 결기를 가져야 한다.

얼마 전 교육부는 입시 개선안 시안을 발표하고 여론 수렴 과정에 들어갔다. 2028학년도 입시 개선안은 우리 교육의 큰 변화를 예고하는 고교학점제 시행을 전제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개선안 발표도 혁신에 대한 고민 없이 지엽적인 문제 몇 가지만을 수선하는 땜질 행정의 관행을 벗어나지 못했다. 발표 직후부터 논란만 키웠고, 사교육 시장으로의 쏠림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지금 교육부는 무얼 해야 하는가? 냉정하게 말하면 스스로 교육부를 해체해야 한다. 지금의 조직 규모는 오히려 혁신의 걸림돌이다.

올해도 출생아 감소는 최저점을 찍었다. 인구절벽은 목전의 현실로 다가온다. 교육의 근본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교육 개혁의 가장 실효적 방안은 단위 학교와 교육지원청이 자율권을 가지고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학교 혁신과 교실 혁신은 교육부의 지침만으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일선 학교와 지자체, 교육청에게 교육부의 관리 권한을 넘기는 것이 개혁의 올바른 방향이다.

고등교육도 시급한 결단이 요구된다. 대학 생존의 가장 큰 걸림돌은 교육부의 규제이다. 대학의 목줄을 쥐고 있는 지금의 앙시앵 레짐, 당장 해체해야 한다. 등록금 규제, 입시 선발권 규제, 모집 정원 유동성 규제, 사학 재산권 규제 등도 모두 풀어야 한다. 대학은 이미 응급 상황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보조금으로 대학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반지성주의이다.

우리에게도 위대한 혁신의 전례가 있다. 세계 최빈국을 선진국의 대열에 올려놓은 ‘한강의 기적’이 바로 그것이다. 영일만 모래펄에 제철소를 지어 산업화의 불꽃을 당겼고, 경부고속도로를 놓아 산업화의 대동맥을 만들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일이었다. 한강의 기적은 사리를 버리고 국가 미래를 위한 대업에 동참하겠다는 리더들의 결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교육 개혁도 이러한 선배들의 결기를 다시 살려내면 가능할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지금 중대한 역사적 고비를 맞고 있다. 교육 개혁의 기로에 선 교육부는 대의를 위해 결단을 해야 한다. 메이지 유신의 ‘위대한 패장’ 가쓰 가이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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