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네마] '영광의 깃발' 흑인의 54연대 신화, 남북전쟁의 운명을 바꾼 실화

  • 기사입력 2020.02.16 13:46
  • 최종수정 2023.03.27 02:55
  • 기자명 김기웅 기자

 

▲     © 영화 '영광의 깃발' 스틸


[OBC 더원뉴스] 군복을 입은 흑인포로는 무조건 총살당해야만 했던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전사한 70만명의 병사들 중 흑인 병사들 또한 많은 수를 차지한다. 

 

최초로 흑인들로만 구성된 부대와 그 부대의 지휘를 맡은 백인 훈련관 쇼(매튜 브로데릭)는 미 국회의 승인도 얻지 못한 채 전투에 참가한다. 이들은 무지와 인종차별의 장벽을 헤치고 싸워야만 했다.

 

덴젤 워싱턴, 모건 프리먼 등 헐리우드의 일급 흑인 배우들이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며, 로버트 굴드쇼 대령 역을 맡은 매튜 브로데릭도 뛰어난 연기를 통해 훌륭한 군인의 기백을 한껏 살려내고 있다. 

 

<가을의 전설>, <커리지 언더 파이어>, <비상계엄>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최고작. 

 

1990 아카데미 최우수 촬영상(프레디 프란시스), 최우수 음향상, 최우수 남우조연상(덴젤 워싱턴), 1990 골든 글로브 최우수남우 조연상(덴젤 워싱턴)수상작.

 

흑인들로만 구성된 제 54연대의 와그너 요새 공격은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흑인은 비윤리적이고 어린아이 같으며 제대로 군기를 잡을 수 없다는 백인들의 편견을 종식시킨 사건을 그린다. 

 

언덕으로 올라가며 적의 집중포화를 받아야 하는, 위험하다 못해 무모한 시도 속에서도 흑인 병사들은 꿋꿋이 지휘관을 따라 돌격했다. 

 

이날 제 54연대가 보인 용맹함은 이후 흑인 자원병을 꾸준히 모집하는 계기가 되었고, 남북전쟁 종전 당시 흑인 병사의 수가 18만여 명까지 이르게 되었다.

 

20세기 들어서까지 흑인 인권 문제는 끊임없이 미국의 발목을 잡았고, 베트남 전쟁에 이르러서야 백인과 흑인 병사들이 같은 부대에 몸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한 세기 전에 흑인들은 명령에 칼 같이 복종하는 군인으로서, 그리고 신념을 위해 온몸을 바쳐 싸우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입증해 보였다.

 

영화 '영광의 깃발'은 작품면에서도 현실적인 전투 장면이 압권이다. 프레디 프란시스의 촬영, 미술감독 노먼 가우드와 의상 담당 프랜신 제이미슨이 심혈을 기울여 고증하고 재연한 당시 시대상, 그리고 영상에 감동을 더한 제임스 호너의 격동적인 음악과 배우들의 열연이 맞물려, 영화 도입부와 엔딩에서 압도적인 전투씬이 탄생했다.

 

현대전과는 완전히 다른 전투 방식이지만 현대전 못지않게 잔인하고 참혹한 아비규환의 상황을 생생하게 잘 그려냈다. 

 

54연대 소속 병사 역할을 맡은 모건 프리먼, 안드레 브라우퍼, 덴젤 워싱턴의 연기 또한 인상적이며, 군대와는 전혀 맞지 않을 듯한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서 조금씩 진정한 군인이 되어가고, 지휘관을 중심으로 단단한 결속력과 우애를 다지는 과정도 흥미롭게 지켜볼 만하다.

 

실화의 주인공인 로버트 굴드 쇼(Robert Gould Shaw)는 보스톤의 부유한 노예폐지론자의 아들로, 23세에 남북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입대했다. 그는 자주 부모에게 포토맥(Potomac) 병영 사정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그 편지들은 지금 하버트 대학에서 보관 중이다.

 

남북전쟁 중인 미국, 정치적 영향력이 꽤 있는 명문가의 아들이자 군인 로버트 굴드 쇼(매튜 브로데릭)가 부상을 당한다. 이후 그는 진급과 더불어 최초로 흑인 군인들로 창설되는 54연대의 연대장으로 발탁된다. 

 

메사추세스 주지사는 흑인지도자의 제안에 따라 흑인부대의 창설을 결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부대의 창설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기에 대위를 대령으로 진급시키며 부대를 맡기게 됐다.

  

1천여명의 흑인들이 자원한 가운데 부대의 전열을 갖추게 되지만, 흑인이란 이유만으로 군용품 지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냉대를 받는다. 쇼 대령은 차별을 똑똑히 느끼면서 보급을 받는데 애쓴다. 그러나 막상 전장에서 흑인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그들은 사역이나 남부지역의 약탈업무에 투입된다.

 

 쇼 대령의 갖은 노력 끝에 그들은 드디어 전투 기회를 얻는다. 이들은 자신들을 환호하는 흑인들의 물결을 보면서 사기충천하게 되고, 마침내 첫 전투에 투입돼 큰 공을 세운다. 

 

곧이어 그들은 난공불락의 바그너 요새를 자진하여 선봉에 선다. 이 요새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좁은 모래언덕 밖에는 길이 없기에 그 선봉이 겪을 희생은 불을 보듯 뻔하다.

 

메사추세츠 54연대는 바그너 요새(Ft. Wagner) 전투에서 반수 이상이 희생됐다. 나중에 온 백인부대들도 많은 희생을 내고 철수했다. 요새 함락은 실패였다. 그러나 그들의 용맹성은 널리 알려져 의회는 흑인 부대의 결성을 정식으로 인가했으며 18만명 이상이 지원했다. 링컨은 이들 흑인들이 전세를 바꿔놨다고 말했다.

 

감독 에드워드 즈윅은 1952년 10월 8일, 미국의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출생했다. 1974년 하버드에서 학사 학위를 따고 미국 영화 컨서버토리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방송 프로그램 편집, 제작, 감독을 하다가 1982년 영화 '해빙 잇 올'을 시작으로 '어젯밤에 생긴 일(1986)', '가을의 전설(1994)', '커리지 언더 파이어(1996)', '비상 계엄(1998)', '라스트 사무라이(2003)' 등을 감독했다. '베로니카: 사랑의 전설(1998)',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9)', '트래픽(2000)', '아이 엠 샘(2001)' 등 다수의 작품을 제작했다. 

 

'비상 계엄'과 '라스트 사무라이'는 직접 각본을 쓰기도 했다. 사회 문제와 인종 문제를 다룬 작품들로 유명하며, 어려운 윤리적 문제와 폭 넓은 캐릭터를 영화 속에 잘 그려내는 지능적인 감독으로 평가 받는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