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窓] 목숨까지 던진 경마기수들의 恨 서린 외침은 무얼까.

지난 29일 부경경마공원 40대 기수 극단적 선택… “부정경마·채용비리” 유서 발견

  • 기사입력 2019.12.02 13:45
  • 최종수정 2023.03.31 13:32
  • 기자명 김정순 기자

▲ 한국마사회 경주 동영상 화면캡쳐.


정말 아무 일 없었던 것 같아 보였다. 여느 때처럼 경주로를 질주하는 경주마들, 채찍질을 하며 말몰이를 하는 기수들, 환호와 탄식이 엇갈리는 관람석의 경마팬들.

 

인간의 뇌에는 ‘죽음은 남의 일’이라고 여기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가 존재한다는 한 연구결과를 방증하듯 지난 주말의 경마장 풍경은 그랬다.

 

지난달 29일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기수 문 모(40)씨가 유서를 남긴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2명의 기수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으며, 2006년 개장 이후로는 네 번 째다. 2017년에는 말 관리사 2명이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했다.

 

문씨가 남긴 유서에는 부정경마와 채용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경마는 스포츠다!’ 한국마사회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구호다. ‘사행성 경마’, ‘경마 도박’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일신하기 위한 간절한 호소처럼 들릴 뿐이다.

 

실제로 승부조작과 같은 비리를 저지르다 적발되는 사례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뉴스를 장식하다 보니, 경마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곱지 않다.

 

경마팬들은 ‘경마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말한다. ‘카더라’식의 푸념일 수도 있겠지만, 그간의 행태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마도 스포츠다. 축구나 야구 같은 여타 종목처럼 스포츠에 속한다는데 이견은 없다. 다만,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경우에 한해서 그렇다는 얘기다. 

 

경주 결과를 예측하고 돈을 거는, 이른 바 ‘베팅’이 수반되면 얘긴 달라진다.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

 

돈을 걸고 승부를 다투는 일, 도박의 사전적 의미다. 과연 경마팬들이 베팅을 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경마장의 수익구조상 독자생존이 가능할까.

 

그렇기에 마사회가 아무리 ‘건전 경마’를 외친다 해도 '공염불'로 들리는 이유다.

 

고육책으로 베팅상한선을 정한다거나 ‘모바일(마이카드) 베팅’ 등 소액으로 즐기는 경마를 장려하고 있으나, 이 마저도 요식행위라고 경마팬들은 일갈한다.

 

현실적으로 10만원인 베팅 상한을 막을 수 있는 장치도 딱히 없다. 마사회가 ‘매출 감소’를 감수하면서 까지 ‘의지’를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팬들은 만무하다.

 

“마사회의 갑질과 부조리가 만든 타살.” 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유가족과 문씨의 동료, 공공운수노조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마사회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책 마련,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 전국 기수를 포함해 모든 조합원이 나서 죽음의 경주를 멈춰내겠으며, 그때까지 고인의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마사회는 전날(1일) 보도자료를 통해 “경마시행을 총괄하는 시행체로 고인의 명복을 기원하며 유족에게도 애도를 표한다”며 “부정경마와 조교사 개업 비리 의혹에 대해 수사를 의뢰한 만큼 결과에 따라 엄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모쪼록 고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유족은 물론 모든 경마 종사자들과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백한 진상 규명이 이뤄지길 바란다.

 

“경마장은 참 많은 것들을 잃게 만드는 구나.” 2010년 3월 부산경남경마장의 홍일점이었던 고(故) 박진희 기수가 남긴 유서 내용 중 일부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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